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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에 대하여

나는 주말에도 행사 MC로 일을 한다. 지난 토요일에 대학 동기가 결혼하게 되어 그 결혼식 사회를 봐주었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밥도 못 먹고 떠나야만 했다. 다른 스케줄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집과 가장 가까운 역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였다. 배가 고팠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내가 도착한 역 근처 닭갈비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다. 그곳으로 갔다.
친구는 내가 모르는 지인과 함께 있었다. 그 지인은 친구 직장의 대표였다. 대표님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지만 곧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즐거웠다. 하지만 나는 금주를 하기에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친구는 그런 나를 놀렸다.
내가 금주하는 이유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다. 지출 내역을 살펴보니 술값으로 돈을 많이 썼더라. 술 마시는 걸 좋아했지만 원하는 걸 다 해가며 목표를 이루는 사람은 없기에 술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친구와 달리 대표님은 그런 나의 태도를 높게 사주었다.
친구와 대표님은 술을 한 잔 더 마시로 갔고 나는 더 낄 수 없어 혼자 터벅터벅 집으로 갔다. 꽤 쓸쓸했지만 한편으론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금주를 실천하고부터 돈을 아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침 일찍 일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푹 잔 뒤 10시쯤 일어났다.(아마 어제 술을 마셨다면 한참 자고 있을 시간이겠지?) 샤워를 한 뒤 집을 나섰다. 영어 회화 스터디가 있었기 때문이다.
11시부터 1시까지 영어 회화 스터디를 했다. 영어 실력을 향상하고 싶은 6명(나를 포함)이 모여 열심히 영어로 떠들었다. 다양한 주제를 영어로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너무 재밌었다. 영어로 더듬거리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되면 묘한 성취감이 가슴속에 차오른다.
오늘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어린 왕자'책에 나온 몇몇 표현들을 영어로 배워본 시간이었다.
'If you come at four in the afternoon, I'll begin to be happy by three.'
(만약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you risk tears if you let yourself be tames.' 등 다양한 표현을 배웠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 흘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많은 표현을 배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All gronw-ups were once children, although few of them remember it.'이다.
해석하면 '모든 어른들은 한 때 어린아이였지만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거의 없다.'이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영어로 '이 문장이 가장 좋아요.'라고 말했다.
'왜 가장 좋아요?'라고 누가 물었고
'순수함에 관한 얘기라 가장 좋다.'고 답했다.
'순수함이 뭐라고 생각해요?' 다른 누군가가 또 질문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요.'라고 답했다.
질문한 사람은 순수함의 구체적인 의미를 더 알고 싶어 내게 질문했다고 생각한다. 근데 돌이켜보면 저 대답은 매우 구체적이지 않았다. 순수함, 과연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에 '순수하다'를 검색해 보았다.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다.'라고 나왔다. 내 대답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순수함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문득 '순수한 사람만이 최고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사임당'이라는 유튜브 채널 중 정신과 의사가 출연해 '자존감'에 대해 얘기하는 영상이 있다. 그 영상에서 정신과 의사는 '자존감과 도덕성은 어느 정도 비례한다.'라고 말했다.(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맥락으로 얘기했던 것 같다.)
"'나만 잘되겠다'는 생각은 결코 큰 성공을 불러올 수 없다."고 또 누군가 말했던 게 기억난다.
'가치 있는 길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말도 떠오른다.
누가 말한 건지, 어디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언젠가 내가 이 비슷한 걸 읽었고 지금 현재 내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문장들이다.
순수함. 누군가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내 마음 한편에서도 그런 속삭임이 들려올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순 없지만, 만약 내가 순수성을 잃어버린다면 내 인생을 통째로 잃어버릴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직감 같은 건데, 우린 때로 이성보다 직감이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릴 적엔 뭐든지 굉장히 신나고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된 지금은 대부분이 식상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근데 때때로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영어를 공부할 때나 동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때. 그럴 때는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느낌적인 느낌을 따라 앞으로도 순수함을 유지하자고 다짐했다.